"삶은 힘든 거야."

 

 

 

이 명제에 끄덕끄덕 하시는 분이 얼마나 계실까요? 또 고개를 저으실 분은 얼마나 계실까요?

저는 요새 제 삶이 참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뭐, 요새 젊은이, 요새 대학생들 중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말이죠.

 

사회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져가고, 그래서 밝은 미래란 말은 점점 찾기 힘든 개념이 되어 가고, 결국 젊은이들은 각각의 살길을

찾기 위해 각자의 길을 고군분투하면서 개척하고 있습니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힌 셈이죠.

 

 

 

 

저도 제 앞길을 개척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여덟 시에 시작하는 연극을 보러 가기 위해 일곱 시 쯤 자리를 박차고 나왔는데, 갑자기 상사분께서 부르십니다.

자켓을 툭 던져주시면서, 이것 좀 세탁소에 맡겨달라고 하십니다. 

 

일곱 시 사십분까지는 대학로에 가야 하는데, 안그래도 딱 맞춰서 갈 법한 시간인데, 갑자기 생긴 급 심부름에 짜증이 났습니다.

게다가 위치를 알려 주신 세탁소는 보이지가 않고, 약 5분 거리에 있는 곳에 세탁소가 있었어요.

 

 

 

 

세탁소에 들어갔는데 급 짜증이 났습니다. 내가 왜 이딴 심부름이나 해야하나. 더럽다,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아가씨, 이거 소매에 두 번째 단추, 원래 색깔 다른거지?"

 

하시는 아주머니의 말씀에 "예," 하고 신경질적으로 답하고, "내일 찾으러 올게요, 김**이요." 하고

가게를 뛰어나와서 전철역으로 달렸습니다.

 

 

그렇게 저는 대학로에 4번출구에 7시 42분쯤 도착했고, 친구를 만나 빠듯하게 발권을 했습니다.

덕분에 자리는 뒷줄. 여기서 상사님 한번 더 탓해주시고. 흑흑. (ㅠㅜ)

 

 

 

 

 

 

연극의 처음은, 어두운 공간에서 나는 야릇한(?) 소리로 시작해요. 그리고 연극의 배경인 오아시스 세탁소가 등장합니다.

세트가 참 앙증맞아요. 빈티지 스타일이랄까요! 연극은 강북을 이야기하고있다지만, 이 빈티지는 신사동 가로수길에

철푸덕, 하고 그대로 옮겨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_^

 

 

 

  

 

 

연극에 등장하는 강태국은 서울 강북에서 30년째 세탁소를 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3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시간이죠. 그래서 이 세탁소에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도 많습니다.
눈시울을 찡하게 만드는 사연, 얼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연들이 소개됩니다.

 

그리고 이 연극의 소품들은 약 10-15년 전의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것 같지만서도, (소품들이 특히나 그렇죠)

이야기들은 2008년의 서울의 크고 작은 이슈들,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그런 주제들입니다.

유학을 보내 달라는 아들, 못 보내주는 엄마, 그냥 웃는 아빠-

아직도 아빠의 웃음이, 귀에 들리는 것 같네요. 허허허허.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갑자기 오아시스 세탁소에

말 그대로 "습격사건"이 발생합니다.

 

돈을 세상의 전부로 아는 네 사람이 할머니의 유산을 노리고 세탁소에 습격한거죠.

이 네 사람에, 아들과 엄마, 그리고 할머니의 간병인까지- 돈을 노린 이들은

한밤에 세탁소를 뒤집니다.

 

 

 

 

개인적으로 세탁소를 밤에 뒤지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한편으로는 마리오네트 공연을 떠올리게도 했지만,

이런 색다른 장면 덕에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는!!

 

 

 

밤중에 습격단이 오아시스 세탁소에서 본 것은 아버지가 아닌, 세탁소 주인이 아닌,

인간 강태국의 모습입니다. 강태국은 여기서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을 한탄합니다.

 

겉으로는 속 좋은 사람처럼, 아니 어떻게 보면 실없는 사람처럼 마냥 웃지만

사실 속상하고 힘든 일이 많은, 누군가의 아이입니다. 그래서 강태국은

아버지가 기록해 놓은 달력을 보면서, 아버지를 찾죠.

 

 

연극을 보면서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도 결국엔 사람이라는 생각, 그리고

돈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다소 진부한 생각이지만

이 연극을 보는 내내 되새겼던 생각입니다.

 

 

사실 저도 저의 미래를 좀 더 안정되게 해 볼까, 하고 열심히 뛰고 있지만

이렇게 빠른 속도로 뛰다가 삶의 다른 면면들을 못 보고 놓쳐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뭉클해지기도 했구요.

 

 

 

강태국의 독백을 들으면서, 괜히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이 쏟아져서 결국엔 친구가 휴지를 꺼내드는 상황까지 발생 (...ㅠㅜ)

 

 

 

결국 욕심 많고 돈에 미친 사람들은 강태국의 커다란 세탁기 안으로 들어가서

깨끗하게 세탁되어 나옵니다. 세탁소라는 일상적인 공간이 동화 속 공간으로 바뀐 순간이었죠.

너무나 현실적인 갈등상황이 너무나 초현실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어쩌면 어색하고 황당할 법도 한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돈이 다가 아니라고 소리쳐도 세상은 바뀌지 않죠. 그에 대한 해결방법은

우리의 마음가짐을 깨끗하게 하는, 다소 추상적인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결말이 이렇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실적인 결말보다는 오히려 이런 결말이

마음을 깨끗하게 해 준다는 취지에 더 부합하는 것 같아요 ^_^

 

 

 

 

 

 

이 연극은 오픈런 공연입니다. 2007년에 이미 10만관객을 돌파했더라구요!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은 스타배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작품으로 꼽힙니다.

그런데도 관객이 많다는 건, 그만큼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거 아닐까요!!

 

 

작품성도 있고,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현재를 반성하게 해 주는 연극입니다.

정말 "100%"추천하고 싶은 연극입니다. 시간나실 때 가서 보시면 정말 좋으실거에요~

 

 

 

아, 맨 앞에 세탁소 이야기를 꺼냈었죠.

이 연극을 본 다음 날인 금요일 날, 세탁소에 갔어요. 괜히 전날 살짝쿵 짜증냈던 게

죄송하기도 해서, 박카스 두 병을 들고 갔습니다. 아주머니께서 마무리를 하고 계셨어요.

박카스 두 병, 별것도 아닌데 아주머니는 너무 좋아하십니다. 제가 황송할 정도루요.

자켓을 손보시던 아주머니께서 갑자기 말을 거십니다.

 

 

 

"아가씨, 이 자켓 입는 분은 대체 어떤 양반이여?"

"아, 상사 분이세요. 왜 그러시는데요?"

"아니, 옷이 좋아 보여서 그러지. 원단도 다르고. 긍금혀서 그러지."

"아 ... 전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다른지 아세요?"

 

"만져보면 알지, 아가씨~ 우린 이 일 그냥 하는 게 아니여."

 

 

 

마치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의 한 장면을 보는 것만 같아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PS 공연에 초대해주신 글쟁이님께 너무나 감사드려요

덕분에 오래간만에 일기장 한 바닥을 가득 썼습니다.

함께 한 친구도 감사하다는 말, 꼭 전해달랬어요 ^-^

앞으로도 <오세습>이 오래 롱런하는 공연이 되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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