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 문화관광부에 제공한 웹DB용 글이다.
2년이 지나서 그런지, 대학로엔 더많은 공연장들이 생겼고, 또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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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연극노트
2005. 9
1.
뉴욕의 중심 맨해튼엔 브로드웨이가 있고, 런던의 중심가엔 웨스트엔드가 있다. 그리고, 서울의 중심이라는 종로에는 대학로가 있다. 모두가 각 나라를 대표하는 도시이자 경제와 산업의 중심 한가운데 위치해 있으면서, 동시에 언제든지 구미에 맞는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각 도시의 공연은 전혀 다른 지위로 존재하고 있다.
브로드웨이는 쌍둥이빌딩의 테러로 아수라장이 된 이후에도 미어터지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으며, 웨스트엔드 또한 수많은 관객들을 극장이 삼켰다 토해냈다를 반복한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공히 명성과 아성의 대규모극장들을 가지고 있고, 수년동안 장기공연되는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로엔 아르코 예술극장(문예진흥원 예술극장)과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200석 미만의 소극장이고, 발디딜틈없는 대학로거리의 사람들 중 관객으로 극장가를 찾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 극장들이 애초 ‘극장’을 목표로 세워진 건물이 아니라, 극장으로 ‘개조’된 극장이며, 따라서 극장이 지니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힘겹게 조명기와 음향기가 매달고 있는 상황이다.
즉, 문예진흥원 예술극장의 설립이후 85년 문화예술의 거리로 특성화되면서 많은 극장들과 극단들이 대학로라는 공간을 점유하게 되었지만, 그래서 거리곳곳을 포스터로 도배하며 수많은 공연들이 올라갔지만, 대부분 나름의 사명의식으로 개인 사재를 털어서 극장을 임대한 것이었을 뿐, 정부의 지원도 연극인 스스로의 전략적 마인드도 부족한 상태였다. 이렇게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진 극장들은 유지에 허덕였고, 결국 술집과 비디오방 등 돈나오는 공간으로 되돌리려는 건물주와 숱한 대립들을 만들어냈다.
낭만적 시각으로 보자면 대학로는 옛시절 개천이 흐르는 대학가들이 머물러 있었던 공간이자, 플라타너스들 사이로 조각품들이 예술의 정취를 느끼게 만드는 공간이며, 마로니에 공원 곳곳에는 노래와 춤과 마임이 사람들을 불러 세우고, 극장에서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 배우들이 관객들의 웃음과 울음을 자아내는 문화예술의 메카이다. 하지만, 또 다아는 얘기처럼 대학로는 늘 가난한 연극인의 아지트이자, 밤을 지새우는 주객들의 보금터이다.
2.
대학로 공연의 흐름을 얘기한다는 것은 분명 한국공연의 흐름을 말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더 정확히 얘기한다면 과거 미개발지역에서 돈 부담을 적게 안고 출발할 수 있었던 ‘연극’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며, 더 자세히는 넉넉지 않은 공연장을 메워갔던 ‘소극장’ 연극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대학로 연극은 극단의 역사, 극장의 역사와 함께 한다. 81년 문예회관 개관이후, 샘터파랑새극장(84), 바탕골소극장(86), 마로니에소극장(86), 연우소극장(87), 동숭아트센터(89), 학전소극장(91) 등이 대학로의 주요 극장으로 개관하면서 대학로는 현재의 명성을 얻게된다. 극단은 자신의 공연공간으로 극장을 거느렸고, 연습공간으로 사무실을 꾸리면서 대학로는 연극의 산실로 자리매김 시작했다.
하지만, ‘문화예술’이라는 낭만성은 동숭동에 임대료 프리미엄을 치솟게 만들었고, 이젠 연습공간과 사무실은 점차 빠져나가고, 이젠 극장들이 그 거점을 마련하고 있다.
사실상, 상업적 논리로 따지자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야할 게 극장들이다. 전회매진을 기록해도 한달이상의 장기공연이 아니고서는 제작비 건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연극들은 매표소를 앞세우고 관객들을 유치하고 있으며, 현재 50여개의 수를 자랑하고, 현재 계획되고 있는 극장설립 또한 적지 않다.
물론 여기에는 한동안 예산적으로 보조되었던 소극장지원이라는 수혜도 있었고, 수많은 연극영화과들-돈되고 이름 날리는 배우들을 만들고자 생겨난-이 앞다투어 극장을 세워 전진기지를 확보하겠다는 의도도 있다. 또한 극장을 보유한 건물에 주는 세금수혜 혜택도 그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연극이 문화적 삶의 자양분이라는 신념과, 다양한 삶의 꼭지점들을 이어가면서 때론 전율을 때론 감동을 때론 반성을 때론 기쁨을 선사하는, 연극 본연의 힘 때문일 것이다.
3.
세익스피어나 체홉같이 연극인 스스로가 관심의 초점이 된 것과 달리 실제 대학로의 흥행연극들은 우리 시대의 희노애락을 함께하는 공연들이었다.
크게 나누어 한 부류는 한국전통연희를 연극에 가져온 것이고, 다른 부류는 당대를 풍자하고 그려내는 연극이다.
전자로 보자면, 이미 70년대부터 전통연희의 놀이적 요소를 원용하여 현대화시킨 극단 목화 (오태석)가 드라마센터에서부터 현재 대학로까지 꾸준히 관객들과 만나고 있으며, 90년대 말엔 아룽구지극장에 터를 잡았다. 80년대 말 부산에서 상경한 연희단거리패(이윤택)는 우리극연구소로 대학로에 터를 잡으면서, 전통연희를 무대 위에 거리낌없이 올려놓았다. 물론, 여기엔 70년대 극단 민예(허규)가 이룩해놓은 전통연희의 연극화작업이 톡톡한 산실이 되었음은 틀림없다. 극단 민예는 현재까지 대학로를 지켜가고 있는 극단이다.
모든 연극이 다 당대성을 띠겠지만, 특히 시대를 풍자하고 그려내는 작업은 극단 연우무대(이상우,김광림,김석만 등)를 필두로 진행된다. 70년대 유신, 80년대 군사독재에 대한 정서적 저항을 기초로 하여, 무엇보다 관객들과 친밀히 만나는 소극장스러운 연극을 만들어낸 게 이들의 성과였다. 연우소극장은 그 보금자리가 되었고, 이후 90년대 풍자의 기치를 높게 올린 극단 차이무(이상우)도 독립되어 만들어진다.
더불어, 80년대의 저항정신은 극단 아리랑(김명곤)-아리랑소극장, 극단 한강-극단 오늘-축제소극장 등이 대학로에 둥지를 틀게 했다.
또한, 70년대 잔혹적 실험연극으로 연극계를 흔들었던 극단 세실(채윤일)은 대학로에 실험연극이란 자양분을 흩뿌려 놓았고, 사실상 모든게 실험인 연극계에서 남은 실험연극의 기치는 90년대 혜화동1번지로 남아 있다.
이들이 대학로연극을 끌고가는 큰 경향이라면, 80년대부터 꾸준히 연극계의 외면을 받으면서도 대학로에 거침없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 소위 ‘벗는’연극과 ‘개그쇼’이다. 많은 사람들이 연극이란 걸 보겠다고 무작정 대학로란 곳에 와서 제일 먼저 멋모르고 손에 이끌려 들어가게 되는 게 이 부류 공연들이었다. ‘연극’이라는 이름에 도덕적 순결성을 훼손했다면서 대립되어 온 기존 연극계와 이들 공연과의 싸움은 처음엔 외설시비로, 다음엔 호객행위시비로, 그 다음엔 이들이 벌어들인 수익으로 극장들을 사들여 감에 따라 일종의 영역싸움으로 지속되어 오고 있다.
현재에 이르러 대학로를 풍미하고 있는 새로운 경향은 뭐니뭐니해도 뮤지컬이다. 극단 학전(김민기)이 학전블루극장과 그린극장을 연이어 개관하면서, 소극장 뮤지컬의 메카역할을 10년 넘게 지속해오고 있으며, 대형뮤지컬들의 잇다른 상업적 성공에 힘입어 대학로 소극장엔 끝도 없이 소극장뮤지컬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새로 지어진 극장들이 대부분 대관을 소극장 뮤지컬에 할애할 정도로 그 상업적 위력은 대단하다. 이는 대학로를 점거(!)하고 있는 10대, 20대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이들이 소극장에 대한 경계를 풀면서 자연 일반연극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대학로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연극경향은 아동극이다. 이미 샘터파랑새극장이나 바탕골소극장, 연우소극장 등에서 꾸준히 지속되어오던 아동극은 극단 사다리(유홍영)가 전용극장을 2005년 대학로에 개관하면서 분수령을 이루고 있으며, 여기저기서 아동극 전용극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80년대 대학로연극의 번성기를 수혜했던 이들이 이젠 엄마아빠로서 다시 대학로에 돌아오는 것이기도 하며, 연극이 주는 체험적 교육효과로 인해 그 열의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다만, 미취학아동에 국한된 관객만 있을 뿐, 정작 초등학생들은 없는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말이다.
4.
대학로는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10대, 20대의 젊음의 거리는 이미 ‘향락’의 거리가 되었다. 또한 지속적으로 ‘연극’의 거리는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향락’와 ‘연극’을 단순히 대조시키면 연극은 이미 향락의 토삿물에 의해 익사된 상태다. 하지만, 그 배설의 악취가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정화되고 정수될 수 있다면, 넘쳐나는 젊은이들이 예비관객으로 여겨질 수 있다면, 대학로는 당당히 문화예술의 거리로 그 이름값을 해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원이 필요하다.
문화예술은 결코 돈의 논리, 경제적 논리로 환산할 수 없다. 얼마를 투자해서 얼마를 벌어들었냐의 관점으로만 출발한다면, 대학로 연극은 승산이 없다. 진정 문화예술의 거리로 ‘정화’를 꿈꾼다면, ‘정화수’설치는 개개인에게 맞겨 놓을게 아니라, 정부가 실질적인 문화생산자와 상의하에 지원과 투자를 더욱 과감하게 진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문화는 선언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 그 자체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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