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마지막 날이었던 어제 저녁 집사람과 함께 리젠트 파크에 있는 야외 공연장에서 세익스피어의 연극 '한 여름 밤의 꿈'을 보았습니다. 여름 시즌 동안에만 즐길 수 있는 이 야외 무대가 제게는 사실 굉장히 오래된 추억의 장소랍니다. 13년 전 배낭여행 왔을 때 바로 같은 장소에서 같은 연극을 보았었기 때문이지요.
물론 지금도 영어를 썩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13년 전 그 때의 영어실력으로 세익스피어의 연극을 보는 것은 거의 영화볼 때 소리를 꺼놓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였지요. 남들이 웃으면 웃긴 내용인가보다 하고 따라 웃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더 창피한 사실은 그 때 이 연극을 보게 되었던 것도 런던에 가면 뮤지컬을 꼭 봐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뮤지컬 공연을 찾다가 잘못 찾아서 이 곳으로 오게 되었던 것이랍니다. 당일표는 이미 매진이어서 극장 앞에 줄을 서 있다가 반환표를 겨우 구해 입장을 했었지요. 그 때 돈으로 35파운드였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그 정도면 배낭여행객에게는 어마어마한 투자였습니다. 시작하고 한참이 지나도 춤은 커녕 노래도 안 부르고 끝날 때까지 계속 대사로만 연결되는 그 공연을 보며 결국 내가 잘못 찾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었지요. 지금은 아래 이 사진 하나만 달랑 남아있습니다.
시간은 흘러흘러 런던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지만 여전히 연극은 제게는 너무 도전하기 어려운 분야였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번에 세익스피어 글로브에서 '오델로'공연을 보고 나서 하나쯤 더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십수년 전 보았던 이 공연이 떠올랐습니다. 마침 올 여름에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공연이 열리길래 얼른 예약을 해놓았지요. 예전에 갔었던 장소를 13년만에 다시 찾는다는 것은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그 동안 이 앞으로 자주 지나다니기는 했지만 말이죠.
여름에 열리는 야외 공연인지라 8시부터 시작되는데 6시 반부터 극장 문을 열고 안에 마련되어 있는 식당에서 부페나 바베큐 요리를 사 먹을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집사람과 불에 바로 구운 햄버거와 소세지를 사먹었는데 여름밤에 야외에서 먹으니까 그 나름대로 분위기가 있더군요.
공연장 옆의 잔디밭에는 아예 소풍가방과 깔개를 준비해 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미리 준비해 온 음식을 펼쳐놓고 저녁햇살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실내공연장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광경들이 여기저기서 펼쳐집니다. 공연을 보러 왔다기 보다는 오히려 야외소풍을 즐기러 온게 아닌가 싶은 모습들이더군요. 다들 즐거운 표정. 불과 1주일 전까지만 해도 계속 비가 내리던 런던날씨를 생각한다면 사람들의 즐거운 표정이 이해가 갑니다.
자 이제 배가 든든해졌으면 공연장으로 들어가서 앉아야지요. 무대가 북서쪽을 향하고 있어서 해가 무대 왼편으로 뉘엿뉘엿 지고 있더군요. 그 주위로는 키 큰 나무들이 빙 둘러싸고 있구요. 정말 저 나무 사이에서 숲 속의 요정들이 금방이라도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공연 시간이 다가오자 밖에 있던 사람들이 줄을 지어 입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한 손에는 와인 한 병이나 차 등을 들고 말이죠. 답답한 실내를 벗어난 자유가 물씬 느껴집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무대 뒤 편으로 어설픈 악단이 들어와 자리를 잡습니다. 고풍스러운 복장을 한 저 악단들은 사실 공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랍니다. 나름대로 제법 연주도 하더군요.
13년 전에 볼 때보다는 많이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역시 원전을 영어로 읽지 않은 채 세익스피어의 연극을 보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단어는 들리는데 머릿 속에서 계속 뱅뱅 맴돌더군요. 물론 알아듣는 부분도 있지만 못 알아듣는 부분이 더 많아 조금 속상했습니다만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마을 사람들의 공연이 완전히 코메디여서 거의 웃느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구요.
중간에 쉬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두시간 반 가량 걸린 '한 여름 밤의 꿈'이 끝나고 나자 하늘은 완전히 깜깜해지고 무대 뒤 쪽 하늘에서는 북두칠성이 떠올랐습니다. 배우들의 마지막 인사를 뒤로 한 채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제 다시 언제 이 곳에서 공연을 보게 될 지 모르지만 매년 여름이 되면 이 곳이 늘 떠오를 것 같습니다. 마치 한 여름 밤에 꾸었던 꿈처럼 아련하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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