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케 교수는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사람들이 집단주의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新古今和歌集에 시를 수록할 때 합의제가 아니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생뚱맞은 예라고 생각되었지만 이 책 덕분에 헤이케이이야기에 나오는 맹장 다다노리를 다시 한번 찾아 볼 수 있었다.

다이라 문중의 사쓰마 태수 다다노리忠度는 무예 뿐만 아니라 시가에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1183년 7월 다이라 문중이 교토를 버리고 서해로 도망가던 때 다다노리는 5인의 무사와 시동 하나를 데리고 다시 도성으로 되돌아와 당대 제일의 歌人 후지와라šœ제이藤原俊成 집을 찾아갔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뭐라고 형용키 힘든 처연한 분위기 속에서 다다노리는 갑옷 이음새 틈에서 자신이 그 동안 만든 100여 수의 노래를 적은 두루마리를 꺼내 후지와라에게 건넸다. 자신이 죽더라도 전쟁이 끝난 후 현재 중단된 국책사업, 즉 당대의 뛰어난 노래를 모아 편찬하는 일이 재개될 때 단 한 수만이라도 채택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찾아온 것이었다.

헤이케이야기에는 이 때 두 사람의 대화를 이렇게 적고 있다.

후지와라: 유품이 될지도 모르는 물건을 받아 든 이상 내 결코 소홀히 하는 일은 없을 테니 그 점을 염려 마시오. 그보다도 이런 상황인데도 이리 오시다니 시가를 사랑하는 장군의 깊은 마음과 뜻에 눈물을 금할 길이 없구료.

다다노리: 이제 몸이 서해 바다 밑에 가라앉고 산야에 뼈를 드러낸다 해도 무상한 이 세상에 여한이 없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šœ제이는 千載集이라는 노래집의 편찬을 맡게 되었는데 다다노리의 노래 "古都의 꽃" 한 수를 역적이 되어버린 그의 이름 대신 무명씨의 작품으로 올렸다. 

사자나미의 시가志賀 옛 도읍은 지금 없어도

예와 다름없구나 먼 산에 핀 벗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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